사향이야기 - 상생상극(相生相剋)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상생상극(相生相剋)이라는 동양철학의 개념에서 출발한 문화적 특성이 있다. 상생상극이란 상생(相生)은 서로 기운을 살려주는 사이인 것이고, 상극(相剋)이란 서로 기운을 꺽어주는 사이인 것이다. 상생상극은 한의학에서 한약을 처방하거나 침치료를 할때 중요하게 여겨지는 핵심이론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상생상극을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경우는 음식이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를 먹다가 체하면 새우를 먹어서 체기를 내린다. 새우가 돼지를 효과적으로 상극하기 때문이다. 면을 먹다가 체하면 무가 좋다고 한다. 무가 면을 상극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인도 모르게 일상에서, 돼지수육을 새우젓갈과, 우동이나 면류는 무반찬에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참외를 먹다가 체하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참외를 상극하여 기운을 꺽는 음식이 과연 무엇일까? 문헌을 살펴보면, 참외를 많이 먹다가 체해서 자꾸 토하게 되면 사향을 조금 따뜻한 물에 타서 복용하면 좋아진다고 한다.

사향이 참외의 상극인 것이다.

별록(別錄)을 보면 “사향은 갑작스러운 복통을 치료한다. 배가 빵빵해지고 결리며 그득한 증상을 치료하고 풍독(風毒)을 제거하고 얼굴의 기미와 안구에 비정상적인 군살이 돋아나는 것을 제거한다.”라고 하였다. 사향은 복통과 구역감만 좋아지게 하는게 아니라 기미에도 좋다고 한다. 사향은 자연이 내린 천연 스테로이드제임으로 피부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

이시진(李時珍)은 “구규(九竅;눈코귀입항문생식기)를 통하게 하고 경락(經絡)을 잘 통하게 하며 살갗과 뼈의 소통을 좋게 한다. 주독(酒毒)을 풀고 오이와 같은 차가운 음식물로 인한 적취를 제거한다‘고 하였다. 사향은 참외뿐만 아니라 오이 등 모든 과채류로 인한 식체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또한 사향이 들어간 공진단이 주독에도 좋은 이유다.

약성(藥性)에는 “끓인 물로 한알을 복용하면 소아의 경련성 질환이나 이물질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호흡곤란이 발생하고 위급한 증상을 치료하고, 心臟(심장)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소변을 자주보는 증상을 치료한다. 또한 모든 부스럼에 진물이 흐르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소합향원같은 응급구급약재에 사향이 꼭 들어가는 이유다.

본초(本草)에는 “사향은 삼종(三種)이 있는데, 첫째는 생향(生香)으로, 여름에 뱀과 벌레를 많이 먹어 겨울에 이르면 향이 가득 들어차게 되고, 그것이 봄이 되면 급통(急痛)을 일으켜 자기 발톱으로 긁어서 떨궈내는데, 이런 생향이 떨어진 부근의 풀과 나무는 모두 누렇게 마르게 되며 이런 생향을 얻기는 매우 어려우며, 진짜 사향을 지니고 오이나 과수밭을 지나면 열매가 달리지 않게 되고, 그 둘째는 제향(臍香)으로, 사향노루를 산 채로 잡아서 채취한 것을 이르고, 그 셋째는 심결향(心結香)으로, 사향노루가 무엇에 쫓기어 미친 것같이 달아나다 저절로 죽은 것에서 채취한 것을 이른다.”고 하였다. 한의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사향은 두 번째인 제향인 셈이다.

문헌에 언급된 생향의 효과가 놀랍다. 사향을 지니고 오이나 과수밭을 지나가기만 하여도 상극작용으로 그 기운을 꺽어버린다는 것이다. 현재 사향시세가 20그램에 200만원가량이니 1그램을 먹으면 10만원 0.1그램을 먹으면 1만원이다. 사향은 0.1그램단위로 복용하니 참외먹고 체하면 만원이 드는셈이다.

소설가 박경리의 토지에 ‘귀녀’라는 인물이 나온다. 귀녀는 최참판댁의 몸종이다. 토지를 보면 귀녀는 최참판댁의 독자인 최치수를 유혹하기 위해 강포수(사냥꾼)로부터 은밀히 ‘그것’을 구입해서 보관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별당아씨로부터 훔친 쌍가락지를 강포수에 주고 구입한 ‘그것’. ‘그것’은 사향이다. 사대부 부녀자 쌍가락지가 보통 세돈이니 지금시세로 보면, 귀녀는 70만원에 강포수로부터 사향을 구입한 셈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에서는 혼인 후 첫날을 주로 처갓집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때 신혼방에 은밀히 사향을 놓아둔다. 사향낭을 방구석에 몰래 놓아두면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나와 남녀상열지사를 지극히 돕게되고 만취한 새신랑의 주독을 자연스럽게 풀어주게 된다. 음양이 서로를 조화롭게 유혹하고 자손을 번성하게 하는 것이다.

사향은 상극기능으로 오이와 참외의 기운을 꺽지만, 반면 상생기능으로 콩팥의 기운을 도와 사람의 기력을 좋아지게하고 자손을 번성하게 하며 피부를 곱게하고 주독을 풀어준다.

사향이 침향 용연향과 더불어 세계 3대향인 연유다.